|
사람과 사람
1. 어느 할아버지의 음악사랑 이야기
T시의 어느 골목 안 낡은 건물 2층에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오신 한 할아버지의 오래 된 사랑방이 있습니다.
그 사랑방은 올해로 아흔 한 살이 되신 할아버지의 모습만 보일 뿐
하루 종일 비어 있는 곳입니다.
음악 감상실이라는 간판도 달려있고 따뜻한 차도 준비 되어 있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할아버지 혼자서 손님이고 주인이며
음악 DJ까지 하시는 클래식음악 감상실입니다.
가끔 몇 명 안 되는 손님들이 찾기도 하지만
거의 빈 좌석에서 왼 종일 홀로 계시며 낮잠을 주무시기도 하지요.
젊은 시절부터 성악가가 되고 싶으셨던 이 할아버지는
파바로티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를 따라 부르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곡을 혼자 연습하시며 지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때 이 음악 사랑방에는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문을 두드리는 유명 예술인도 있었고
6‧25피난 시절에는 유명한 음악가와 문학자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
바닥까지 자리를 메우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혼자 지키시며
아침에 출근해서 음악을 틀어놓고 종일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시다
밤이 되면 브람스의 자장가를 마지막 곡으로 문을 내리며
쓸쓸히 혼자 퇴근 하십니다.
이제는 연세가 많아지자 더 이상 기운도 없고 여러 가지 형편상
경영의 한계를 느껴 문을 닫으려고 결심도 해 봅니다만
60여년을 자식 같이 아끼던 레코드며 기계가 있는 사랑방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매일 매일이 근심이었고 가슴이 답답해 편치가 않았으며
노래도 목이 메어 부를 수가 없어 꼭 병들어 누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사실을 안 그 지역의 어느 신문사와 구청에서 오래된 레코드와
이 지역의 명물이 된 이 사랑방을 보존하기 위해 도움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작은 음악회를 주선 해주기도 하고 음악 동호인들의 음악 감상회 때는
감격스럽게도 이 자리에 시립합창단원 여러분이 오셔서
축배의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매일 매일 손님이 찾아와서 격려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먼지 속으로 묻히게 될까 걱정했던 LP와 SP 레코드의 운명도
바뀔 것 같은 생각에 주인 할아버지는 매일 신이 납니다.
아마도 혼자 계실 때는 축배의 노래를 부르시며 즐거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할아버지는 다시 아무도 찾지 않는 나날 속에 갇히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은 이제 굳이 감상실을 통하지 않아도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세월이 되었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은 또 다시 할아버지의 바램을
외면하게 되었죠.
시에서, 구청에서 갖는 관심으로는 역부족이었지요.
할아버지는 다시 텅 빈 음악실 안에서, 그러나 익숙하게
혼자 손님이 되어 감상을 해 봅니다.
우리가곡 ‘명태’를 들으며 이 곡의 가사를 작사자 양명문 씨로부터
직접 적어 받았던 옛날의 기억도
한 때는 많은 좌석이 꽉 들어차 흐뭇했던 기억도 해 봅니다.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종일을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음악이 곁에 있으니 지루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할아버지는 마음속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성악가의 열정에 심지를 올려
파바로티가 부른 ‘토스티’의 ‘이상’을 영상으로 보며 따라 불러 봅니다.
“나는 넓은 하늘에 평화의 무지개 같이 널 따랐네./ 나는 어두운 밤에 횃불을 벗 삼은 듯이
널 따랐네./ 나는 꽃향기 속에서 또 빛과 공기 속에서 널 느끼고/ 네가 없는 텅 빈방은
너의 영광으로 가득 찼네./ 너의 황홀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랜 꿈을 꾸었네./ 지상의
모든 근심과 고난은 이 꿈 속에 잊어버리네.
사랑의 이상이여 잠깐 동안 만이라도 돌아와서/ 다시 한 번 나에게 미소를 주오./ 너의
모습 속에서 다시/ 새벽은 내 위에 새롭게 빛나리라.”
화면 속의 파바로티 에게 보내는 많은 박수와 환호를 보며
아무도 없는 좌석을 그냥 왔다 갔다 하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오늘도 브람스의 자장가를 올려놓기 위해
LP레코드를 턴테이블 위에 가만히 놓습니다.
이 분은 바로 저의 시아버님이십니다.
얼마 전 아버님께서 넘어지시며 허리를 크게 다쳐 거동이 아주 불편해
저의 집으로 우선 모셨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사시는 어머님 역시 연로하셔서
수발을 들 수가 없으시기도 하지만 그 몸으로 음악실에 나가시려고
애쓰시기 때문에 아예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모셔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이곳에서도 잡수시고 운동하시는 모든 이유가
하루라도 빨리 음악실에 가서 앉고 싶은 생각에서였고
그 일에 매우 열중 하셨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부비며 지내던 음악실은 이제 동행이 아니라 살점이었습니다.
아니 핏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뇌경색으로 인한 몇 번의 마비증세로 여전히 불편한 몸이 걱정도 되지만
40여일을 낯선 곳에서 너무도 지루하게 지내시기에
결국 다시 그리워하시는 집으로 모셔 드렸습니다.
다시 아버님은 그동안 떨어져 있던 레코드를 어루만지시며 또
손님이 되었다가 종업원도 되고 주인도 되는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생활은 아마도 살아계시는 동안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것입니다.
“느그 아버지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셨다. 인제는 지팡이도 안 짚고 다니신다.
음악실이 병원보다 더 낫능기라.”
오늘도 어머님은 걱정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전화 해 주십니다.
2. 행복한 나무
그녀는 자기를 땅꼬마라고 한다.
키가 작아서 부르는 별명이기는 하지만 격의 없고 친근감이 생기는 이 애칭을
나는 사랑한다. 이 별명에서 그려지는 모습 그대로
그녀는 작은 키에 누구나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외모를 가졌다.
그녀는 늘 즐거워한다.
심지어 병든 아버지 목욕시키는 것도 감사해 하고
지병으로 다리를 쓰지 못해 기어 다니시는 시어머니를 보살피는 이야기하는데도
힘들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히려 고부간에 소통을 하는 시간으로 여기며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녀의 음성은 화려하게 높은음도 아니고 비밀스러워 보이는 낮은음도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나오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음으로
고달프고 마음이 지친 할머니들에게 혹은 수감 중인 재소자들에게
시를 읊어주기도 하고 용기를 주는 글을 읽어 줄 때는
듣는 이에게 눈물을 자아내게도 하고
때론 즐거운 음을 쏟아내며 주위를 즐겁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녀를 만나는 수요일에는 모두가 그녀를 기다리며
‘오늘은 무엇으로 우리를 즐겁게 할까’하고 기대를 한다.
봄에는 감자를 쪄오기도 하고 옥수수, 고구마를 철 따라 쪄오는 것은
으레 하는 일이다.
어떤 날은 다른 행사에 참가해서 얻어온 떡을 무겁도록 가져와 꺼내면서도
“이건 앵벌이 해서 가져온 것”이라며 우리들을 웃기곤 한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언니는 여태껏 살아온 시간 중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어느 때였어요?”
하고 질문을 한다.
“글쎄…, 글쎄…” 난 끝내 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얼버무리고 있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내겐 그렇게
행복했다고 느껴질 만큼의 황금시대가 없었던 것 같다.
결혼 후 얼마간은 적은 월급을 쪼개가며 살림 살랴 적금 쪼끔 들랴
여유 없이 빠듯했으니 아이들 사교육비 이외 나의 개인적인 일이나 취미 따윈
생각지도 않고 살았으며,
그 후 사업하면서부터는 사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해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아 늘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으니
이때 역시 행복하다고 말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사십대에 시작했던 일은 지난 세월의 치다꺼리 하느라 정신없이 지냈으며
거기에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아 늘 고단하기만 했으니
그 역시 행복감과는 먼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그냥 놀고먹는 것이 그다지 맘이 편치만은 않으니
도무지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도 먼 거리에서 산 것만 같았다.
그나마 겨우 애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고 애들 어릴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아마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말하고
“그럼 명자씨는?” 했더니
“언니,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 한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후 몇 년이 지난 후부터 지금까지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했다. 그 말은 나를 퍽 당혹케 했다.
그녀는 남편을 벽에 걸어놓은 사진 속에서나 만나고
아들과는 떨어져 살고 있으니 반겨줄 식구가 늘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님 병간호를 하는 처지라 신세한탄도 할 만하건만
지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거기에 소외된 장애아를 도우는 사회봉사에 참여하고
동네일까지도 맡아야하는 바쁜 중에서도
우리가 모이는 날에는 다과준비까지 하느라
작은 몸을 요리조리 굴리며 사는 그녀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사실은 사랑하는 남편을 보낸 후
상실과 우울의 늪이 깊었다고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어느 때,
비로소 자기보다 못한 남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마음에 행복이 찾아왔다고 했다.
집에 와서도 그녀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박혀있다.
나는 어느 때가 행복했을까…
얼마 전 이웃에 놀러 갔다 들은 일도 생각 해 봤다.
이웃에 놀다가도 때가되면 끼니때마다 밥을 차리러 일어서야 하는 게 싫어서
“아유, 귀찮아. 혼자 살면 얼마나 편할까”했더니
“그런 말 말게, 나는 밥상 차려주며 함께 밥 먹을 사람 있는 자네가 부럽다네.”
하시며 혼자사시는 이웃 아주머니가 나를 책망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이 작은 행복도 얻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걸
미쳐 깨닫지 못 했구나 하며 고개 숙이는데
“지나고 나면 모두가 아름답지. 행복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모르는 법이여.
지금 나처럼.”하며 덧붙여 말 해주시던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녀와 나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물질적인 안위와 시간의 여유로움에서 행복을 찾으려하고
지금이 행복하다는 그녀는 이런 나의 기준을 초월해
스스로의 팔을 뻗어 남의 손을 잡아주는 정신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
바로 그 것인 것 같다.
꽃이 스스로가 예쁠 때 가장 사랑받는 것처럼
자기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남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그 사랑을 받으므로 내가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그 동안 나는 잊고 살았다.
오늘 나는 아주 귀중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자.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행복한 나무를 심고 지금부터라도 키워보자.
그리하므로 해서 나의 나무는 아주 행복한 고목으로 아름다워질 것이고
내 삶이 더 빛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가슴이 담박 열리는 것 같고
그녀에게 대답을 못해 우물쭈물 하던 것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제 그녀를 만나면 며칠 전 제대로 못했던 답을 오늘은 꼭 이야기 해야겠다.
“명자씨, 나는 지금도 무척 행복해.
그리고 자기를 만난 것은 더 행복한 사건이야” 라고
3. 남애할머니와의 대화
며칠간 노인 장기 요양원에서 치매노인 수발 실습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내가 찾아 간곳은 노인성 질환으로 인해 침상생활만 해야 하는 와상환자와
치매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인 요양시설이다.
내가 배정 받은 곳 역시 치매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 둘째 딸.”이라는 할머니,
하루 종일 밥 달라고 조르는 할머니,
보따리 싸고 풀기를 왼 종일 하는 할머니 등등
갖가지 형태의 치매어르신이 계신 방이다.
우리가 할 일은 주로 이 할머니들과 말벗을 해드리는 일이었다.
내가 주로 함께한 할머니는 남애 할머니인데
남애서 사셨던 것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치매상태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보이지만
역시 그 분도 꼭 같은 치매 노인이시다.
나는 틈틈이 그 어르신에게 다가서며 말벗을 해드리곤 했다.
말벗이래야 인지가 떨어진 할머니가 되풀이 하는 말을 상대하며 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들에겐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단다.
“선생님, 제 신발 좀 찾아 주세요.”
“할머니, 아까 찾아서 보여 드렸잖아요? 나중에 밖에 나갈 때 드릴게요.”
“언제요? 나는 못 봤는데…”
“할머니, 신발 신고 어디 가시려구요?”
“집에 가야지요. 우리 어머니가 날 기다리고 계실 텐데… 빨리 가 봐야 되는데….”
“어머니가 어디 계신데 그러세요?”
“집에 있어요.”
“어머니가 보고 싶으세요?”
“보고 싶고말고요. 우리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 혼자 머슴 데리고 농사지으며 딸 둘을 키우셨어요.
아들도 학교에 못 가던 시절인데 우리어머니는 딸 둘을 남애 초등학교에서
공부하게 했을 때 우리는 학교에 안가겠다고 어머니를 붙들고 울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배워야 한다며 억지로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감자도 삶아 먹여주고 옷도 입혀 주었는데…
어머니가 날 얼마나 기다릴까… 빨리 신발 찾아 주세요.”
“할머니, 그래도 아직 학교 공부가 끝나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집에 가셔도
어머니가 논에서 일하고 계시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요 할머니~~.”
“아, 그렇구나. 그래서 신발을 안주는구나.”
할머니는 잠시 포기한 듯 가만히 있다가 화장실엘 다녀오신다.
수시로 화장실을 다니시느라 바쁘지만 그래도 대소변 가릴 줄 아는 것만 해도
참 다행스럽다.
다시 거실 한쪽에 쭈그리며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선생님, 제 신발 좀 찾아주세요. 신발이 없어요.”한다.
나는 옷장에 넣어 두었던 신발을 살짝 꺼내 보이면서 귓속말로
“할머니 여기 신발 있잖아요?
지금은 여기 넣어 두었다 나중에 밖에 나갈 때 신겨 드릴게요.
지금 내 놓으면 다른 할머니들이 훔쳐가요.
그러면 할머니는 어머니 만나러 갈 수가 없어요. 알았죠?”
“아, 그렇구나. 거기 있구나. 빨리 어머니한테 가서 잘 해드려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 혼자 머슴 데리고…”를
또 줄줄 외우며 신발을 넣어둔 옷장 앞에 앉는다.
나는 생각을 돌리려고 할머니의 두 손을 잡으며
“할머니 우리 노래할까? 무슨 노래가 좋을까….”하다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이렇게 노래 부르기를 시작 한다.
할머니는 음정이나 가사 한자 틀리지 않고 잘 따라 부르신다.
내가 크게 하라고 주문하면 좀 더 큰 소리로 열심히 따라 부르고
몇 곡을 더 불러보아도 가사와 음정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오히려 나는 알지 못해 얼버무리는 2절 가사까지도 참 생생히 잘도 기억하고 있다.
참 신기하다 싶어서 아까 물었던 나이를 또 물어본다.
“할머니 지금 몇 살이지?”
“서른여섯 살.”
옆에서 듣고 있던 현주씨가 웃으며 대화를 거든다.
“할머니, 나는 서른두 살인데 나보다 네 살 더 많네.”
이 할머니의 오전 나이는 마흔 셋이었다.
올해 여든 네 살이신 할머니의 나이는 이렇게 물을 때마다 바뀐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고
몸이 자유롭지 않은 채로, 또는 치매로 오래 살고 있다는 것은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발에 대한 애착심을 갖는 것은 훨훨 날며, 달리며, 당당히 걷고 싶다는
잠재의식 속에서 온 것 같다.
어제는 해거름 녘 밖을 보며
“내신세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는 중얼거림을 듣고
애처로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저 할머니도 뛰어 놀던 어린 날이 있었고 달리던 청춘이 있었으며
앞뒤 돌아보지 않고 일 하던 장년이 있었을 게 아닌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간사인데 나라고 어느 때 저 곳에 앉아
신발을 지키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 할 수 있을까.
오늘 나는 며칠간의 일정을 끝마치고 노인 장기 요양원을 나왔다.
왠지 서운해서 그냥 돌아서지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기도 했다.
비록 실물이야 아니지만 내 마음이 담긴 예쁜 꽃신 한 켤레씩을
할머니들의 마음속에 안겨드리려고
앞앞이 정중하게 고개 숙이며 인사드리고 나왔다.
“비록 몸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예쁜 신발을 신고
훨훨 자유롭게 다니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상상 속이 아니라 우리와 꼭 같이 세상 속에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게 제 진정한 마음이랍니다.
부디 사시는 날까지 이보다 더 나쁘지 않게 사시다 편안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인지가 있으신 어른들은 눈물을 보이시기도 하지만
남애 할머니를 비롯한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냥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데
그 눈들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연민의 정이 퍽이나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 나는 이곳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오래토록 아프게 기억 하며
늙고 병드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에 잠길 것 같다.
|
|
|
|
|
|
주요서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