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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고라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번도 산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는데다가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푸르른 산이 두 동강나면서 그 사이에 검은색 괴물이 생겼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 각인된 길 안내 세포를 총동원해 길을 찾아보았지만 내가 편안히 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산속에 있는데 말입니다. 그 산 앞에는 네모난 괴물들이 떼 지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다가갈 수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풀밭을 가로질러 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바람에 향긋한 풀 향기가 전해집니다. 길을 찾아 헤매느라 배도 고픈데, 풀밭에서 요기나 하면서 천천히 길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풀밭 앞에는 높은 철망이 쳐져있습니다. 도움닫기를 하면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뒷걸음질을 해보았습니다. 아, 어쩌면 좋을까요? 한 걸음밖에는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습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네모난 괴물들이 줄지어 서서 내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빵빵 경적을 울립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검은색 괴물위에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뛰어 넘어야겠습니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온 힘을 모아 펄쩍 뛰었지만 그만 철망에 앞 다리가 끼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발버둥 치다가 간신히 발을 뺏습니다. 저 괴물들만 없었다면….
얼마 전 자식 둘을 잃은 고양이가 생각납니다. 깜깜한 밤, 고양이 가족이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눈을 부릅뜨고 달려오는 괴물에게 당했다고 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도 없이 당했다며 밤새도록 어미 고양이가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되기는 싫습니다. 기필코 이 철망을 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네요. 다시 한 번 도움닫기를 하며 힘껏 달렸지만 발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산을 내려가면 안 된다고 엄마가 말했었는데….
괴물 안에 앉아있는 인간들이 문을 열고 저를 쳐다보네요. 인간들은 우리 집이 있는 저산을 찾아오곤 했지요. 그들은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몸을 나무에 텅텅 부딪치기도 하고, 고정되어있는 가늘고 긴 막대기를 양손으로 꽉 움켜잡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막대기 위로 몸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한 남자가 돌덩이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지요.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그에게 말했어요.
“여보게, 액땜했다고 치게. 그래도 아들이 그만하기 얼마나 다행인가? 자동차는 폐차했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찻길로 뛰어드는 고라니 때문에 운전하기 겁나는구만.”
“지난번에는 멧돼지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걸 소방관들이 구한 적이 있잖은가. 어제도 길바닥에 널브러진 고라니 시체를 봤다네. 차에 깔리면서 가죽이 벗겨졌는지 내장이 터졌는지는 몰라도 몸뚱이 반쪽이 벌겋더구만. 고양이들이야 덩치가 작으니까 부딪쳐도 큰 사고 안 나지만, 고라니나 멧돼지는 위험천만 아닌가. 찻길로 뛰어드는 야생동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 뭔 방도가 있어야지, 원.”
아니, 우리 고라니 때문에 방도를 세워야 한다니 무슨 뜻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인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그들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엿듣고는 했지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기겁을 하면서 산 아래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지요. 산 아래에는 괴물이 살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고라니보다 훨씬 덩치가 큰 멧돼지도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괴물에 부딪쳐 죽었다면서요. 큰 산에서 이사 온 너구리한테 들었다면서 겁먹은 눈망울을 애써 감추며 말해주었지요. 그 멧돼지는 옆 산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대요. 어느 날부터인지 그 산 가운데에 검은색 괴물이 길게 누워있었지만, 멧돼지는 늘 다니던 길이라서 별 의심 없이 괴물을 가로질러 달려가다가 일을 당한거래요. 하지만 엄마한테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려움보다 괴물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몰래 산 아래로 내려왔는데….
네모난 괴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인간들도 점점 내 주위로 몰려들어요. 급한 마음에 허둥지둥 거리다가 또다시 철망에 다리가 끼었어요. 발버둥 쳐 보았지만 꼼짝할 수가 없네요. 앞발을 빼다가 뒷발마저 철망에 끼어버렸어요. 그때였어요. ‘삐용삐용’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다가오네요. 그 괴물에서 주황색 옷을 입은 인간들이 내리고 있어요. 그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네요. 나는 어쩌면 좋을까요?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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