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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1. 어머니의 매
굳이 박인수가 노래한 정지용의시 ‘향수’에서 구절을 빌리지 않아도
나의 어머니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보통의 아낙네로 사셨다.
내가 시집 갈 때까지도 비싸고 좋은 옷 한 벌 없었고
정갈하게 기름 발라 쪽진 머리를 하고 화장도 않으셨다.
그러나 사실 내 어머니의 얼굴은 참 예쁜 얼굴이었다.
어머니를 꼭 닮아 잘 생긴 우리 오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시절 모두 어려웠던 때였지만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셔서
잘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구차한 살림은 아니었는데 다만 꾸미지 않고 검소하게 사셨고
시대가 달라져도 또 유행이 바뀌어도 따르지 않고 사셨을 뿐이다.
어머니는 늘 비싸지 않은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사시면서도
남의 것이나 좋은 것을 탐내거나 부럽다는 말을 하시진 않았다.
성정 또한 강직해서 돌아가실 때까지도 흐트러짐 없이 사신 편이었다.
어릴 때 우리는 도덕책이 필요 없었다.
책보다도 더 확실한 회초리가 어머니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게 살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욕 하지 말고,
싸움 하지 말고, 남을 해 치지 말고….
심지어 일요일에도 늦잠자면 게을러진다고도 맞아 보았다.
여자지만 골목대장인 동생은 더욱더 그랬다.
동네 애들을 때려서 울려놓고 집에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잠그고 회초리 뜸질을 당하기도 했고
워낙 험하게 노는 바람에 옷이 성치가 않아서 맞기도 많이 맞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문을 열어 놓고 우리를 때리셨다.
그것은 한두 대 맞고 도망가며
"아이고 엄마 나 다시는 안 그럴게" 하는 막내에게
길을 열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정확히 우리 어머니 연세가 일흔 둘이었을 때다.
우리 내외가 친정인 서울에 갔다가 대구에 오려는데
어머니가 같이 내려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대구에 사는 막내에게
당신이 믿는 종교의 성경공부를 시키시겠다는 것이다.
갑자기 나서는 어머니를 본 오빠가
"어머니, 제발 그 성경공부 소리 그만 좀 하세요. 바쁜 막내가
그 공부 할 시간이 어디 있데요 가지 마세요."
하며 큰 소리로 말하고 어머니를 붙잡았더니
"뭐라구? 그럼 너라도 좀하지 너는 왜 안 하냐" 하면서
오빠의 멱살을 잡더니 손으로 한번 세게 치시는 걸 보았다.
어머니는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딸들에게 종교를 갖게 하는 것이 소원이셨다.
그건 영원한 안식처에 대한 어머니 나름대로의 절실한 믿음이셨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생각을 아무도 따라주지 않아서 서운한데
오빠가 동생의 신앙을 막는데 속이 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일흔 둘 노인의
변하지 않는 기세가 정말 충격이었다.
그것은 강하고도 야릇한 흥분이기도 했고
아직도 강한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든든하기까지도 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어머니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수년간 병상을 떨치지 못하는 힘든 동생을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기도한다.
" 엄마,
엄마가 사랑하시던 막내가 너무 많이 아파 걷지도 못해요.
그 때의 그 기세로 막내를 좀 때려주셔요.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며 '아이쿠 엄마 일어날게요.'
할 때까지요 엄마." 라고….
아아, 그러나 다시는 볼 수도 맞을 수도 없는 어머니의매는
아픈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남아 힘없이 주저앉아만 있다
2.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동생에게 보낸 글 중에서)
어느 해인가…
아마도 내가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기억이 되는데
어머니랑 언니 집엘 함께 간 적이 있었어.
언니가 마침 미장원에 파마를 하러가는 중이라기에
나는 얼른 어머니께 언니와 같이 파마할 것을 권유했었지.
어머니는 그 때 쪽진 머리는 아니지만 뒷머리를 틀어 올려
머리핀으로 고정시키고 다니셨어.
늘 단정하게 빗질하고 다녀서 보기에 싫지는 않았는데도
나도 모르게 무심코 “엄마도 파마 좀 해봐”라고 했던 거야.
의외로 어머니는 순순히 응하시더니 긴 머리를 자르고 파마머리를 하셨어.
처음엔 좀 쑥스러워 하시더니 이내 “어떠니?”하고 웃으시는 모습에서
그동안 내심 누가 좀 데려가주길 바라셨던 속내를 읽을 수가 있었지.
그 때만해도 나이든 어머니들이 파마머리를 많이 하지 않았던 때였으니까
혼자서 불쑥 미장원에 들어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거야.
파마머리가 좀 젊어 보인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어머니가 좋아하시니까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았었지.
언뜻 그 생각이 떠오르던 어느 훗날에
그날 환하게 웃으시던 웃음의 의미를 뒤미처 깨닫고
난 긴 시간, 내 가슴에 박힌 무거운 돌을 안고 아프게 운 적이 있었어.
“아, 우리 엄마도 외모에 관심이 있는 똑같은 여자였었는데
딸이라는 게 그걸 모르다니….”
마음속에 걸리는 게 어찌 한두 가지겠는가만 또 이런 일도 있었지.
아버지가 환갑이 되던 해라고 기억 되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형편이 되면 반지 하나 해달라고 하셨어.
어떤 반지냐고 물었더니 금반지가 아닌 알이 박힌 반지를 끼고 싶다고 하셨는데
내 형편으로 좋은 걸 해드리지는 못 했어.
그 후로 몇 번 금반지 낀 옆 손가락에 내가 해드린 반지 낀 것을 보면서
우리 엄마도 저런 반지를 갖고 싶으셨나보다 그렇게만 생각을 했었지.
그 당시는 그런류의 보석반지를 끼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엄마는 그런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평소의 우리엄마답지 않다싶어 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
그러고 난 후 나는 줄곧 잊고 있었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중에
어머니가 당뇨 때문에 쇄약해진 몸으로 딸들을 보겠다고 대구에 왔다가
서울로 가실 때 내가 모시고 간 적이 있었지?
내 생각엔 아마 그 때가 마지막으로 대구에 오셨을 때였을 것 같아.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내게 십년도 넘은 그 반지를
장롱에서 꺼내어 다시 주시면서
“그 땐 다들 반지를 끼고 자랑하기에 너보고 해달라고 했지만
이젠 내가 너무 말라서 반지가 크기도 하고 이런 건 필요도 없으니
네가 다시 맞추어 끼렴.” 하시며 이미 볼품없는 구식반지를 내게 주시는데….
아… 우리 어머니도 남들과 똑 같이
딸이 해 주더라며 자랑이 하고 싶었던 것을…
아닌 척, 못 본 척 살아오신 어머니의 세월을
바로 이 딸이 모른 척하며 살고 있었다니…
어머니로써 올곧게 사셨다는 것은
그 세월 속에 속을 얼마나 태우고 삭히며 사셨다는 것도 모르고…
왜 나는 어머니를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가슴으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리 식구들이 나보고 맨 날 뒷북친다고 했었지.
난 이렇게 뒤늦게야 깨닫는 미련퉁이기에 그랬던 모양이지?
그래서 이렇게 미련스럽게도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 이야기하며
늘 용서를 구하는구나.
“엄마, 정말정말 잘못 했어요, 미안해요, 용서해 주셔요.” 하면서…
그리고 생전에 늘 하고 싶었던 말도 뒤늦게야 이렇게 고백 한단다.
“어머니,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이 말은 자식인 우리들의 공통 된 고백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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